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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러 퍼지는 나눔의 소리  -한 결(월촌중)-

(이글은 2010년 나누미락이 발행한 우리들의 멋진 나눔이야기2의 글을 발췌한 글입니다. )

 작년 12월 12일, 전국 6개의 지역의 자선냄비 앞에서는 우리 푸른누 리 기자들이 많은 사람들과 봉사와 나눔을 실천하였다. 특히 서울지역 에는 푸른누리 오케스트라가 특별 봉사 공연을 하게 되었다. “We wish a merry christmas~” 아름다운 선율로 가득 찬 청계천 동 아일보 앞, 10여 명 정도의 푸른누리 기자들이 플루트, 바이올린 등 악 기와 노래로 길거리를 사랑으로 가득 채웠다. 10여 곡으로 푸른누리 오 케스트라단은 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공연을 하였다. 이 오케스트 라는 청와대 어린이 카페(네이버 카페)에서 기자단 학생들이 직접 만들 었는데 계속 정기적으로 모여 연습을 하였고 11일부터는 1박 2일로 연 습을 하고 1박 2일을 못한 단원은 아침 8시부터 연습실에서 연습을 하 였다. 




 시간이 부족해서 점심도 굶은 채, 동아일보 주위에 있는 기부하 면 치킨, 피자 등을 주는 곳에서 간단하게 허기를 채우고 공연을 하였 는데, 길을 가던 사람들이 잠시 멈칫하더니 환하게 웃으며 사진을 찍고, 자선냄비 안에 기부를 해주셨다. 동아일보 앞에는 오케스트라 말고도 구세군 체험에 뽑힌 친구들도 와 있었다. 이 기자들은 마이크로 사람들에게 말을 하며 사랑을 전했 고, 사람들이 기부를 하면 “고맙습니다.” 하고 인사를 했다. 우리들은 함께 큰 목소리는 아니지만 각자 연주하는 악기로, 노래로 지나가는 사 람들에게 사랑의 실천을 해주시라고 열심히 연주를 했다. 첫 공연이라 정말 많이 떨렸지만 어느새 많이 모여든 사람들의 응원 과 격려가 큰 힘이 되어 우리들의 푸른소리는 청계천에 희망차게 울러 퍼지는 것 같았다. 구세군 모금함을 보니 왜 빨간색일까? 누가 먼저 만들었을까? 생각 해보게 되었다. 구세군에 대해 더욱 더 궁금해진 나는 구세군의 상징에 대해 알아보았다. 붉은 방패는 구세군의 사회봉사 사역의 상징으로 국제적으로 사용 되었다고 한다. 18세기가 끝나는 한 세기의 변화 시점에서, 구세군의 상징 중 하나인 글자 ‘구세군(The Salvation Army)’이 가로질러 장식된 은으로 만든 방 패 모양이었는데, 이 방패는 특히, 전쟁 중의 수비부대에서 근무하였던 많은 구세군인들이 배지로 착용하였다. 보어 전쟁(1899-1902)이 끝난 직 후, 호주 구세군 사관이었던 조지 카 펜터 참령은 전쟁 중에 구세군인들이 착용한 이 은색 방패가 야간에 빛을 반사하여 적들에게 군대의 위치를 노출시킬 위험이 있음을 걱정 하였다. 


 그래서 은을 빨간 에나멜로 대체하고, 지금의 ‘빨간 방패’가 되 었다. 중앙에는 생명의 빛을 의미하는 노란 태양이 있었고, 1882년에 별 모양으로 바뀌었다. 면류관은 구세군의 신앙, 즉 영적인 사역에 대한 의 미 있는 상징이다. 사관 윌리엄 엡돈 정위가 1878년 디자인하였고, 그 후에 그의 최초 디 자인에 왕관 모양이 추가되었다. 면류관의 모양은 그 하나하나가 다음 과 같은 구세군의 주요 교리를 상징하고 있다. - 둥글게 주위를 둘러싼 태양은 성령의 빛과 불을 나타낸다. - 십자가는 면류관의 중심에 위치하며 구세군인의 믿음을 나타낸다. - 십자가 위의 글자 ‘S’는 죄로부터의 구원을 나타낸다. - 양쪽의 칼들은 죄에 맞서는 싸움을 나타낸다. - 탄환들(십자가 아래 일곱 개의 점)은 복음의 진리를 나타낸다. - 왕관은 신실한 신앙의 사람들이 받을 하나님의 상을 나타낸다. - 글자 “Blood & Fire(血火, 피와 불)”는 구세군의 표어다. 이는 모든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모든 신자들을 정화하는 성령의 불을 나타낸다. 세계적으로 구세군기는 죄악와 사회악에 대해 구세군이 싸우고 있 음을 나타낸다. 깃발의 붉은색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파란색 테두리 는 성결을 상징하고 중앙의 노란별은 성령의 불을 의미한다. 구세군의 군대식 조직은 구세군인들의 유니폼으로 확연히 드러난다. 구세군 사관, 병사들은 유니폼을 입음으로써 자신의 신앙을 눈에 보이 는 방법으로 표현하고, 확연히 구분되는 복장으로 인해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도울 수 있는 기회를 얻기도 했다고 한다. 구세군 최초의 ‘정위’가 된 엘리야 카드먼(Elijah Cadman)은 전직 굴 뚝 청소부였는데, 그는 초기 회당에서 “모든 이들이 내가 철저하게 세상 구원을 위하여 싸우는 사람임을 알 수 있도록 유니폼을 착용하고 싶다.”라고 말하며 사람들을 설득하였다. 

그는 후에 군복 스 타일의 유니폼을 입게 되도록 영향력을 끼 친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다. 현재의 구세군 유니폼은 수년간에 걸쳐 발전하여 온 것이다. 구세군은 동시대의 감 각을 반영하기 위하여 유니폼 스타일을 계 속해서 검토하고 있다. 또한 각 나라 기후와 상황에 맞게, 국제적으로 다양한 형태의 유 니폼을 착용하고 있다. 구세군의 브라스 밴드와 합창단은 전 세 계적으로도 유명한데,구세군에 브라스 밴 드가 처음으로 시작된 것은 우연이라고 한 다. 최초의 구세군 악대는 1878년 영국 살리스배리에서 시작되었다. 감 리교회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였던 찰스 프라이와 그의 세 아들이 최초 의 구성원이었다.

살리스배리 구세군 전도자들은 지역 폭력배들로부터 탄압을 받았 다. 이러한 와중에서 구세군 전도자들이 시장과 같은 장소에서 찬송가 161 를 부르며 전도활동을 할 때, 프라이와 그의 아들들이 보디가드 역할을 하였다. 이때 그들은 악기를 가져와서 노래에 반주를 하였으며, 이 우연 한 상황 가운데 구세군 악대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찰스 프라이 가족의 작은 밴드는 전도활동에 큰 성과를 가져다주었 고, 결국 프라이 가족은 사업을 처분하고 구세군 전임 음악가가 되었다. 



 
그 이후, 몇 년 사이에 브라스 밴드는 구세군이 있는 모든 나라에 빠르 게 확장되었다고 한다. 나는 한 번 더 사랑과 나눔을 전하는 구세군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 았다. 추운날씨를 따뜻하게 데워주는 구세군! 나는 이날 연주를 한 것 이 너무나도 자랑스럽고 잊히지 않을 것 같다. 우리도 찰스 가족의 밴드처럼 시작은 미약하지만 언젠가는 우리의 이렇게 작은 날갯짓이 사람들에게 나눔의 행복을 알려주는 나비효과 를 가져오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많은 사람들과 나눔을 실천한 12일은 너무나도 나에게 갚진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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