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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로운 할머니의 친 손녀처럼 -안수빈 기자(안곡고)-


작은 선물이 주는 기쁨 

중간고사가 끝난 후 가뿐한 마음으로 할머니 댁을 방문했다. 한참 문 을 두드린 후에야 할머니께서 부스스한 모습으로 문을 열어주셨다. 어 서 들어오라며 반가이 맞아주셨지만 할머니 얼굴은 퉁퉁 부어있었다. “할머니, 어제 어버이날 잘 보내셨어요? 복지관에서 나들이 시켜드렸다 면서요.” “호수공원 꽃 박람회에 갔다 왔어.” 힘겹게 말씀하셨다. 어제 너무 많이 걸어 힘들었다며 지금까지 누워 계셨다고 하셨다. 아빠와 나는 할 머니께 카네이션 꽃바구니와 선물을 드렸다. “아니, 양산 아니야? 화사한 꽃무늬가 너무 예쁘네. 이것 정 말 갖고 싶었는데 못 샀어. 다들 자식이 있어 이런 것 선물 받았 는데 나는 자식이 없어 아무도 안 줬어. 너무 좋아. 이렇게 마음 에 드는 선물 받으니 너무 기분이 좋다.” 환하게 웃으시는 할머니를 보곤 어쩐지 코끝이 찡했다. 그 흔한 양산 하나 선물 못 받으셨다니 그동안 얼마나 쓸쓸하셨을까. 그리곤 양산을 펼쳐서 같이 써보자며 아빠와 나에게도 양산을 씌워주셨다. 비록 햇빛 도 들지 않는 캄캄하고 조그만 방이지만 양산은 우리를 포근히 감싸주 었고, 양산을 쓴 세 사람은 어린애 마냥 양산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양 산에 그려진 활짝 핀 꽃만큼 우리 마음도 환하게 핀 것 같았다. “너는 내 손녀고, 엄마는 딸, 아빠는 사위야.” 자식이 없어 젊은 시절 너무나 외롭고 쓸쓸하셨다며 가족의 소중함 에 대해 말씀하셨다. “친구들은 선물 받았다고 얼마나 자랑하는지 몰라. 나도 빨리 노인 정 가서 자랑해야지. 이번 토요일 또 올 거지?” 자꾸 물어 보셨다. 할머니께 핸드폰 사용법 가르쳐 드리기 “할머니, 다음 주 토요일 만나요. 토요일 할머니 그렇게 원하시던 곳 모시고 갈게요.” 우리 가족은 돌아오는 발길이 무거웠지만 다음 날을 기약하며 손을 흔들며 집으로 왔다. 


오늘 몸보신했네! 

며칠째 장맛비가 그칠 줄 모른다. 그것도 양동이로 쏟아 붇는 정도 도 아닌 세차장의 세차 수준이다, 게다가 바람, 천둥, 번개까지 동반하 여 온 세상을 뒤집어 놓은 듯하다. ‘이 비에 할머니 집은 괜찮을까? 할머니는 뭘 하고 계실까? 어제 엄마 께서 할머니와 통화하실 땐 별일 없다고 하셨다는데…….’ 수업을 마치고 학교 가사실에서 만든 삼계탕을 가지고 서둘러 할머 니 댁으로 향했다. 방금 끊인 삼계탕이 쏟아질세라 어머니는 천천히 운 전하셨고, 나는 국이 쏟아질까봐 불안해 냄비를 꼭 잡고 있었다. 쏟아 지는 빗속을 헤치고 할머니 집에 도착하니 마당은 물이 차서 들어서기 가 힘들었다. “할머니, 수빈이 왔어요.” “그래, 왔냐, 비가 많이 와서 힘들었지.” “할머니, 아침 식사하셨어요?”  “아니, 삼계탕 먹으려고 기다리고 있었지.” “아니, 지금 12시가 다 됐는데 여태까지 식사도 안하셨어요?” 엄마와 나는 서둘러 가져온 삼계탕으로 식사준비를 했다. 할머니는 닭을 하나하나 발라서 천천히 꼭꼭 씹어 드셨다. 냄비에 남은 밥알과 국 물까지 남김없이 싹싹 다 드셨다. 우리가 상을 치우려고 할 때, 할머니께 서 먹고 남은 뼈를 나중에 다시 데워 먹겠다며 남은 삼계탕 그릇에 담 으시는 모습을 보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집에서 엄마가 저 렇게 하셨다면 지저분하다고 신경질을 냈을 것이다. 평소 아무 생각 없 이 편하고 좋은 것만 챙겼던 내 자신이 너무 한심했다. “오늘은 몸보신했네. 날씨도 더운데 음식 마련하느라 힘들었지?” 하 시며 연신 얼굴에 흐르는 땀을 닦아내셨다. “고마워, 내가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 계속 고맙단 말을 하시는 할머 니 얼굴은 행복해 보였다. 이 궂은 날씨에 노인정도 못가고, 외로이 TV 보다 잠만 주무셨다는 할머니 말씀에 가슴이 찡하다. 

 한 평 남짓한 방 안에서 온종일 꼼짝 않고 있으려니 얼마나 답답하셨을까. 그래서 봉사 날만 가다리신다는 할머니가 안쓰러워 사정없이 내리는 비가 너무 얄 미웠다. 그런데 오히려 할머니는 “비가 많이 와서 어떻게 가겠냐?”며 우 리 갈 길을 걱정하셨다. 할머니는 비가 많이 와서 문밖으로 나오지는 못하시고 문안에서 손을 흔들며 소리치셨다. “수빈아, 안녕, 조심해서 가.” 이 비는 언제 그칠까? 내일은 해가 쨍쨍 나서 할머니 마당이 보송보 송해졌으면 좋겠다. “할머니 다리 다 나으시면 같이 나들이 가요” 올해 84세이신 윤점순 할머니는 18살에 결혼하셔서 한국전쟁 때 두 아들을 잃고, 65세에 혼자되어서 갖은 고생을 하셨다. 젊은 시절 절구 통에 왼쪽 발가락이 찌여 왼쪽 엄지발가락이 발 안쪽으로 70도쯤 휘어 져 이젠 걷기조차 힘들어 하셨다. 그런 할머니께서 드디어 수술을 받게 된 것이다. 할머님의 발은 보기에도 끔찍했다. 그 발로 그동안 어떻게 걸어 다니 셨을까. 게다가 허리가 아파 거동도 불편하신데 발가락까지 완전히 휘 어진 채로 지팡이에 의지해 다니시느라 얼마나 힘드셨을까. 그러나 할 머니께선 발 수술에 대해 말하기 전까진 엄마와 나 앞에선 전혀 불편 한 내색을 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나는 할머니께서 연세가 있으셔서 거 동이 불편하신거라고만 생각했었다. 할머니께선 12일 날 입원하셔서 그 다음날 수술을 받는다며 수술 결과에 대해 조금 불안해 하셨다. 나는 지금은 의술이 발달해 이런 수술은 아주 간단하고 수술 받고나면 아주 편하게 나들이도 가실 수 있으니 얼마나 좋으시겠느냐며 할머니를 위 로해 드렸다. 8월 13일 할머니는 수술을 받으셨다. 엄마가 병문안을 가셨을 때 나 는 절대 병원에 데려오지 말라고 하셨다. 당신의 이런 추한 모습 보여주 고 싶지 않다고……. 그 후 일주일이 지나 할머니는 퇴원하셨고, 26일 일 부 실을 뽑아 이제는 많이 좋아지셨다.

  “할머니 힘드시더라도 조금만 더 참으세요.” 나는 아픈 다리와 팔을 주물러 드렸다. “수빈이가 오니까 오늘 기분이 너무 좋다. 공부하느라 시간도 없을 땐 데 와줘서 고마워.” 연신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하루 종일 집 에만 있으니 너무 심심해서 온종일 텔레비전만 보신다고 하셨다. 할머 니와 함께 있어 주지 못해 죄송스러웠다. 앞으로 3주 후면 완치된다고 하지만 혼자 계실 할머니를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웠다. 29일 봉사 가는 날 가져간 반찬을 할머니께 드리며 그동안 어떻게 지 내셨냐며 즐겁게 이야기 하는 중에 어떤 아주머니께서 찾아 오셨다. 복 지관의 소개로 오신 아주머니는 할머니 말동무해 드리기 위해 오셨다 고 한다. 돌아가신 아주머니 둘째언니와 할머니 연세가 비슷해 언니가 보고 싶어 자원봉사를 신청했다고 하셨다. 아! 세상은 너무나 따뜻한 사람이 많구나. 가슴이 뭉클했다. 엄마와 내가 2주에 한 번씩 밖에 못가 서 수술 받으신 후 마음에 쓰였는데 정말 감사드리고 기뻤다. 서로 도우 며 살아간다는 생각에 마음이 뿌듯해졌다. 할머니께선 나를 예뻐해 주 시고, 나와 엄마는 할머니께 반찬을 가져다 드리고, 주위 분들이 같이 관심을 가져 주는 것만으로도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지 않 을까 생각해본다. 할머님의 수술은 주변의 따뜻한 사랑을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그래서 세상은 살아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하는 걸까.

 “할머니 다리 다 나으시면 같이 나들이가요.”

 “그러자구나 수빈아, 와줘서 고마워. 또 와!” 거동이 불편해 문밖으로 나오시지는 못해도, 우리를 마지막까지 배 웅해주시는 할머님의 마음이 내 마음까지 따뜻하게 했다. 사랑의 김장김치 나누기 김장철을 맞이하여 지난 11월 21일 안곡고 효사랑 봉사단은 학교 가 사실에서 학부모, 학생 18명이 모여 김장 김치 나누기 행사를 가졌다. 학교 소재지인 고양시 중산동과 주변 일산동 일대 독거노인 총 5가 구에 겨우내 중요한 밑반찬이 될 김장김치를 만들어, 방문 전달하는 훈 훈하고도 정감어린 효사랑 실천 봉사를 했다.


 “나 휴대폰 바꿨어!” 

할머니께선 휴대폰이 잘 작동이 안 되고, 충전도 안 되어 불편하다고 속상해 하셨다. 휴대폰 가게에 가면 돈 안들이고 살 수 있는 공짜폰도 많다고 구입 방법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드렸다. 11월 첫째 봉사 날에 할머니 댁을 방문하여 가져온 반찬으로 서둘러 상을 차려드렸다. 할머니께서 급히 식사를 하셔서 마음속으로 우리가 오면 식사하시려고 아침도 안 드셔서 배가 많이 고프셨나보다고 생각했 다. 그런데 수저를 놓자마자 휴대폰을 보여주셨다. “수빈아, 나 휴대폰 바꿨어.” 할머니 휴대폰은 자세히 보지 않으면 엄마 휴대폰과 착각할 정도로 모양이며 색깔이 비슷했다. “엄마가 사용하는 것과 똑같은 거예요.” “나는 전화 오는 것만 받았지 아무것도 몰라.” “할머니 이 전화기 좋은 거예요.” 할머니께서 원하는 벨소리를 골랐고, 벨소리 크기, 배경 화면, 글씨 모양, 글씨 크기 등을 하나하나 바꿔드렸다. 그리고 사진도 찍어 드렸 다. “할머니, 예쁘게 웃으세요, 김치, 하나, 둘, 셋” 휴대폰으로 방금 찍은 사진을 보여드리니, 한 번 더 찍어 달라시며 좋아하셨다. “수빈아, 나, 예쁘게 찍어줘라.”고 하실 땐 할머니가 귀엽게 느껴졌다. 몇 차례 사진을 찍은 후, 제일 잘 나온 사진을 휴대폰 배경 화면에 깔아드리곤 할머니께 보여드리니 “정말 내 얼굴이 맞네.” 하시며 신기 해 하셨다. 그러곤 나는 배운 것이 없어 글자도 못 읽는다며 신세 한탄 을 하셨다. “할머니, 이 휴대폰은 작동하기가 쉬우니까 올 때마다 하나씩 가르 쳐 드릴게요. 글자 모르셔도 상관없어요.” 옛날에 집안 사정이 어려워 18살에 시집와서 학교도 못 가보고 허리 를 다쳐도 병원 가는 건 생각도 못했다며 쓸쓸히 웃으셨다. 그래서 여러 가지 벨소리를 들려드리며 분위기를 바꾸려 애썼다. 아파도 돈이 없어 병원도 못가고, 배우고 싶어도 사는 게 궁핍해 학 교는 엄두도 못 냈다는 할머니의 하소연은 풍족하게 살면서도 만족하 지 못하고 짜증만 냈던 나 자신을 반성하게 했다. 봉사를 시작한 후론 그나마 조금씩 불우한 이웃에 관심을 가지게 되 었고, 나눔을 같이하려 했다는 생각은 진심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어 미 안함이 앞섰다. 10년 동안 사용한 휴대폰을 바꿨다며 자랑하시다가도 전에 사용한 휴대폰이 너무 정이 들어 바꾸기가 싫었다는 할머니 말씀을 듣고 새 물건만 좋아하는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지난 봉사활동을 통해 내 가족, 내 이웃, 내 친구가 있어 나는 행복하 고 즐겁다는 걸 생각하니 이런 깨우침을 주신 할머니께 감사드리며 주 위의 모든 사람들의 건강과 행복을 빌어본다.  

마지막 봉사 가는 날 

3월 6일, 오늘은 할머니 댁에 마지막으로 봉사 가는 날이다. 다른 날 같으면 봉사 가는 날 아침 뭔지 모르게 들뜬 기분이었는데, 오늘은 할머 니 댁이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발걸음이 무겁고, 가슴이 답답해졌 다. 어떻게 할머니께 말을 꺼낼까. 몇 달 전부터 걱정하고, 고민하다 말 못하고 오늘까지 오게 됐다. “엄마, 할머니 너무 슬퍼하시겠지.” 할머니 집 문 앞에서 “할머니, 저 왔어요.” 애써 크게 할머니를 불렀 지만 아무 대답이 없어 문을 열고 들어가니, 몸이 불편하신지 누워계 셨다. “수빈이 왔냐.” 하시며 힘겹게 일어나시는 할머니를 부축했다. “요사이는 왜 이리 몸이 불편한지, 나도 나이가 들었는 가봐?” 말씀 하는 것조차 힘들어 하셨다. “요사이는 비와 눈이 자주 와서 저도 몸이 무거워요.” 엄마도 할머니를 위로하셨다. 나는 “할머니, 어깨랑 다리 시원하게 주물러 드릴게요.” 평소 때보다 더 열심히 주물러 드렸다. “아이고 시원하구나, 수빈이 손이 약손이네.” 좋아하셨지만 할머니 얼굴을 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엄마와 나는 할머니 눈치만 살피다가 엄마가 용기를 내서 “할머니, 수빈이가 올해 고3이라 공부를 해야 해서 올해는 다시 올수가 없어요.”라며 이야길 꺼내셨다. “대신 신입 회원이 할머니 댁을 찾아 올 거예요. 그동안 할머니랑 정 들어서 친정어머니 같이 편하고 푸근했었는데 지금처럼 매달 오지는 못해도 시간 나는 데로 찾아뵙고 자주 전화 드릴게요.” “그래, 그러면 할 수 없지 뭐. 아이고, 아이고! 눈물이 나는 게 아니라 눈이 가려워!” 하시며 무덤덤하시게 계시더니 이내 눈물을 닦으셨다. “할머니 자주 오지는 못하지만, 가끔씩 전화드릴게요. 할머니 제 전 화번호 아시죠. 전화하고 싶으면 눈사람 모양의 8을 꾹 누르세요.” 할머니께 안겨 울었다 그러자 할머니께선 휴대폰을 꺼내 눈사람 모양 숫자 8을 꾹 눌러보 셨다. “수빈아, 우리 수빈이 맞지.” 내 목소리를 확인하곤 애써 웃으셨다. “그동안 너무 오래 만나 깊이 정이 들었는가봐.” 자꾸 서운하다고 하셨다. “할머니, 시간 나면 찾아뵐게요. 그리고 저 대학 가면 그때는 자주 올 수 있어요. 대학 발표나면 찾아뵙고 맛난 것 사드릴게요.” “수빈아 공부 열심히 해서 꼭 가고 싶은 대학 들어가. 할머니 기도할 게.” 하시더니 또 “아이구 아이구!” 하시며 슬퍼하셨다. 할머니를 위로하 다 또 서로 껴안으며 같이 울었다. “할머니 항상 건강하시고 오래오래 사세요.” 인사하고 나오는데 왜 이리 눈물이 나는지. 할머니 집을 나서는 발걸음이 무거워 걷기가 힘들었다. “수빈아. 수빈 아!” 하고 부르시는 소리에 자꾸 뒤돌아보며 손을 흔들었지만, 눈물이 앞을 가려 할머니 얼굴이 흐려보였다. 할머니, 당신과 함께한 시간은 여유롭고 평화로운 시간이었습니다. 할머니, 당신과 함께한 시간은 웃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할머니 함 께해서 행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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